목록으로 돌아가기

종이 한 묶음

Content

종이 한 묶음

(첫 번째 종이. 글씨체에서 힘이 느껴진다) 코흐에게: 우리 가족이 내게 사과하러 왔어. 용서할 생각은 없었는데… 갓 태어난 손자를 데리고 왔더라. 그래서 난 요양원을 떠나기로 했어. 사둔 묘지랑 묘비는 네게 줄게. 거절하지 마. 이미 사제님과는 얘기를 끝냈거든. 이제 묘지는 네 거야. 묘비에는 아직 이름을 새겨 두지 않았어. 멋진 묘비니까 네 영정사진이나 붙여 놔. 백 년 뒤에, 몬드의 바람 속에서 다시 만나자. 아… 아니지. 난 산을 내려갈 거고, 너도 조만간 회복할 테니까. 그럼 산 아래에 있는 술집에서 다시 만나자고. ——68세인데도 아직 키가 183cm인 바우어가 남김. (두 번째 종이. 글씨체가 다르다) 요양원의 환우 여러분께: 바우어 어르신이 마침내 가족분과 화해하셨다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해 드립니다. 바우어 어르신은 가족과 절연했다는 걸 증명하려고 거금을 들여 요양원 묘지를 구매하셨습니다. 다만 저는 그것이 일시적인 충동과 치매 증상이 겹쳐 생긴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요양원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우분들이 많으니까요. 우리 모두 집안의 어르신을 공경합시다) 아무튼, 어르신은 이제 가족과 화해했다며 그 묘지를 제게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전 묘지 같은 건 원하지 않습니다. 재수 없잖아요! 그건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불길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저는 조만간 폐병이 다 나으면 내려갈 예정이라, 묘지와 묘비의 소유권을 양도받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참고로 선착순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필요한 분이 계시면… 이 말도 좀 이상하네요. 뭐, 아무튼… 무슨 뜻인지는 다 아시죠? 나중에 완치돼서 내려오시는 분은 시간 될 때 같이 술 한잔 하십시다. ——다시는 광부 일을 하지 않을 코흐가 남김. (세 번째 종이. 글씨체가 다르다) 요양원의 환우 여러분께: 저는 묘비를 조각하는 가문 출신입니다. 리월, 몬드, 이나즈마 양식은 물론 사리탑까지 만들 수 있고, 글씨를 새기는 일도 할 수 있죠. 리월의 왕생당과 페보니우스 성당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묘비에 글을 새기고 싶은 분이 있으면 저를 찾아오세요. 물론, 제가 회복해서 산을 내려가기 전에 말이죠. 돈은 안 받습니다. ——《무덤 파는 자의 노래》를 부를 줄 모르고, 또 물어보면 당신의 묘비에 저주를 새겨 줄 토텐그라보프가 남김.